독도영유권

지리적 역사적 근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 1905년 일본,독도 강제편입
  • 17C 말 일본정부, 독도와 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 19C 일본 메이지 정부의 공문서, 독도와 울릉도를 한국영토로 확인
  •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
  • 연합국,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 발표
  • 유엔군,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
  • 1905년 일본,독도 강제편입
  • 강원도 관찰사 서리가 참정대신에게 올린 울도군수 沈興澤의 보고서와 대한제국 참정대 신의 지령문(1906) 울도군수 심흥택은 이 보고서에서“본군 소속 獨島가”라고하여 독도가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임을 밝혀 항의했고, 참정대신은“일본의 獨島領有의說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일본측 주장을 항의 비판하였다.

    일본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후,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의 동태를 감시하는 해군 망루(望樓)를 독도에 세우기로 하였다. 이 때 마침 나카이(中井)라는 일본 어업가가 독도의 물개잡이 독점권을 독도 소유권자인 대한제국 황제에게 신청하려 하였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한국 소유 땅임을 알면서도‘무주지’ (주인 없는 땅)라고 전제하면서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리고 이름을‘다케시마’(竹島)로 하며 시마네현 행정소관으로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은‘독도’가‘한국 영토’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독도 영토편입이 세계에 알려질 것이 두려워『관보』에 싣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독도는 1905년 1월 28일 이전에, 이미 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로서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유주지’였다.

    따라서‘무주지’(주인 없는 땅)이기 때문에 독도를 일본에 영토편입한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는 불법적,무효의 결정이었다.

    울도 군수는 1906년 3월 28일에 비로소 일본의 독도침탈 사실을 알고 강원도 관찰사를 통해 중앙정부에 보고했으며, 대한제국 참정대신은 즉각 일본의 불법성을 규탄하였다.

    그러나 4년 후인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제에게 병탄되어 버렸으므로, 독도는 온 나라를 되찾을 때 함께 되찾게 되었다.

    출처 : 독도연구보전협회